끌어당김의 법칙 시각화와 심상화가 실제 현실로 이루어진 적 있으신가요? 그런데 분명 내가 원했던 장면 그대로 현실이 되었는데, 정작 그 안에 담긴 의도와 의미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면 어떨까요? 결과는 같지만 과정과 맥락은 달랐던 저의 시각화 경험담을 나눠보겠습니다.
목차
끌어당김의 법칙 시각화로 그려본 부모님의 모습
저는 끌어당김의 법칙에 관심을 가진 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그동안 감사 일기나 긍정 확언, 시각화와 심상화, 그리고 원하는 모습을 이미지로 만들어 바라보는 비전보드(vision board)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실천해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몇 년 전부터 가끔씩 마음속으로 그려보았던 부모님의 모습이 있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부모님은 서로 성격도 많이 달랐고, 사이좋은 부부는 아니었습니다. 두 분 모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지만 함께 어울리기보다는 각자 친구나 지인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고, 집에서는 사소한 일로 자주 다투기도 했습니다.
물론 부부라도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두 분의 경우에는 함께 보내는 시간은 거의 없었고 각자 따로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엄마는 늘 그런 관계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몇 년 전 저는 야외에서 빠르게 걷기 운동을 할 때면 나이 지긋한 부부가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었습니다. 젊어서 부부관계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더라도, 노년기에는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되어 서로 의지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고 느꼈습니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부모님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저렇게 손을 잡고 함께 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건강한 모습의 두 분이 손잡고 나란히 걸어가는 장면을 마음속으로 그려보곤 했습니다.
그것은 심상화보다는 시각화에 가까웠습니다. 두 분의 대화하는 목소리나 그날의 날씨, 두 분이 하는 행동, 두 분의 기분과 그 모습을 바라보는 제 감정까지 디테일한 설정을 만들어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까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두 분이 손을 잡고 함께 걸으며, 아빠가 엄마에게 조금 더 다정하고 배려 있게 행동하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무엇보다 두 분이 행복해하는 모습으로 말이죠.
하지만 그 장면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간절함이나 집착은 없었습니다. 그저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정도의 바람이었고, 그렇게 여러 차례 시각화한 뒤에는 자연스럽게 잊고 지냈습니다.
사실 두 분의 사이가 특별히 좋아질 계기는 보이지 않았고, 두 분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니 몇 년 전 마음속으로 그려보았던 한 장면이 시간이 지나 실제 현실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는 당시에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습니다.
시각화·심상화한 장면이 현실이 되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러니까 올해부터였을 겁니다.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요즘 아빠와 엄마는 아침 6시쯤 함께 걷기 운동을 하기 위해 공원에 나가십니다.
척추를 여러 번 다치고 보행 이상이 생긴 엄마를 매일 운동시킨 건 원래 제가 하던 일이었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보니, 언젠가부터 아빠가 격일로 엄마와 함께 운동을 나가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자처하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를 운동시키기 위해 보호자 역할을 잘 해주고 계십니다.
처음엔 두 분이 함께 아파트 문을 나서서 공원으로 향하는 모습을 베란다 창문으로 바라보며 얼마나 울컥했는지 모릅니다. 한동안은 그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남기곤 했습니다. 늘 똑같은 모습으로 걸어 나가는데도, 그 장면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만 해도 제가 했던 끌어당김의 법칙 시각화를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 것이죠. 이 모습이 마음속으로 그렸던 바로 그 장면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소름이 돋았습니다.
두 분이 손을 잡고 함께 걷기 운동하는 모습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불가능에 가까웠던 일이 어느 날 정말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누군가는 그게 뭐가 대단한 일이냐,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평생 부모님과 함께 살아오면서 두 분을 봐왔지만, 두 분이 함께 손을 잡고 공원에 걷기 운동을 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감격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각화한 장면과는 차이가 있는 현실
제가 마음속으로 그렸던 두 분은 건강하게 손을 잡고 공원을 걷는 모습이었습니다. 엄마가 척추를 여러 번 다쳐서 보행 이상이 생기고, 그래서 꼭 함께 부축하고 걸어야 할 보호자가 필요한 현실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두 분이 손을 잡고 운동하는 모습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끌어당김의 법칙에서는 원하는 일이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개인적으로 설정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컨트롤하게 되면 편견과 제약이 생길 수 있고,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일이 이루어지는 가능성을 제한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시각화한 장면이 현실이 되기는 했는데, 왜 하필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 걸까? 내가 놓친 게 뭘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무의식 깊은 곳에 남아 있던 불안과 두려움이 뒤섞여, 내가 바라던 장면을 이런 모습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아닐까? 혹은 두 분은 물과 기름처럼 도저히 섞일 수 없는 사이라서, 이런 강제적인 상황이 아니고서는 함께하기 힘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제가 원했던 장면을 현실에서 그대로 보게 되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도와 의미는 전혀 달랐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제가 경험한 끌어당김의 법칙에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부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얘기는 누군가에게는 아주 허황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저 일어날 일이 일어났을 뿐인데, 거기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 말도 맞을 수 있습니다.
그저 끌어당김의 법칙의 관점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시각화에서 그 상황을 조금 더 생생하게 느끼고 체험하는 심상화를 했더라면, 지금 보는 현실의 장면이 혹시 달라져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두 분이 바른 자세로 건강하게 움직이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그날의 상쾌한 공기와 날씨, 만나는 사람들과의 인사 등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샤워하는 엄마의 모습까지 떠올리는 것이죠.
아직 완성되어 가는 나의 시각화·심상화
그래서 저희 부모님이 손잡고 공원을 산책하는 시각화·심상화는 완성된 버전이 아니라, 아직 과정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끌어당김 시각화·심상화는 계속되고 있었고, 그 내용은 갈수록 더욱 구체적이고 생생해져서 정말 현실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5년 동안 수차례 척추를 다친 엄마의 정확한 병명도 아직 찾지 못한 채, 매우 불확실하고 암울한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불안과 두려움 한편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단단한 믿음이 있기도 합니다. 엄마가 건강하게 회복되어 다시 본인의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엄마의 병명을 찾기 위해 수많은 병원을 다니고, 다양한 곳에서 치료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하면서 힘을 얻는 일보다는 무력감과 좌절감을 더 많이 느꼈습니다. ‘나이에는 장사가 없다’, ‘노화를 막을 수는 없다’, ‘나이 들어서 다치면 회복이 어렵다’와 같은 관념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고정관념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이 사실은 오랫동안 주입된 관념에 지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떤 90대는 50대 못지않은 신체 상태를 가질 수도 있고, 어떤 20대는 70대처럼 몸이 약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에는 자신이 가진 생각과 믿음, 생활 방식과 관리 방법 등 여러 요소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60대에 몸이 좋지 않다고 해서 70대에는 반드시 훨씬 더 몸이 나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10살이나 더 먹었으니 당연히 더 노화하고 더 안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 역시 하나의 고정관념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어떻게 바라보고 정의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모습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믿음은 이상하리만치 견고하고 단단합니다. 그렇다고 불안과 두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는 그렇게 자연스러운 믿음이 단단하게 받치고 있어서 오히려 평온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세상이 우리의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더라도, 우리는 낙관적인 미래를 그려나가겠다는 뚝심이 마음 중심에 딱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 어느 날 문득 그 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이 참 기특하기까지 했습니다. 육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니, 세상은 그저 온전하고 완전하다는 것이 보였습니다.
지난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이미 이루어진 상태를 완전하게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면 감사 일기, 긍정 확언, 시각화·심상화 등의 방법을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두 분이 꼭 손을 잡고 함께 산책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진짜 원하는 의도는 두 분이 함께이든 따로이든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핵심인 것이죠.
하지만 부모님 두 분이 손잡고 공원을 산책하는 일은 제게 더 이상 상상이 아닌 현실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건강을 회복해 더 이상 부축이 필요 없게 된 후에도, 두 분이 손잡고 함께 산책하는 일상이 습관처럼 자연스러워진 모습으로 느껴집니다. 이제 두 분은 건강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고, 현재의 건강함에 매일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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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오늘은 끌어당김의 법칙 시각화와 심상화를 통해 제가 몇 년 전 마음속으로 그렸던 부모님의 모습이 실제 현실에서 나타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 봤습니다.
분명 제가 원했던 장면은 현실이 되었지만, 그 과정과 상황은 제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지금은 꼭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우리가 마음속으로 그린 장면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현실에 나타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린 아직 그 과정 속에 있고, 그 모든 과정이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걸 깨닫고 있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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