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독립 욕구와 분리불안이 공존하는 모녀관계의 딜레마

집안에서 엄마와 딸이 서로 등을 기대고 앉아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장면 일러스트

정서적으로 독립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지만, 동시에 분리불안을 느끼고 있는 우리 모녀관계의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엄마를 간병하는 보호자 역할을 맡기 전부터도, 우리 모녀 관계의 패턴은 계속 비슷한 면이 있었습니다. 제 무의식 속엔 엄마에 대한 불안이 컸습니다.

목차


무의식 속 '불안'이란 감정의 뿌리

엄마를 떠올리면 어떤 감정이 가장 먼저 드시나요?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이 함께 뒤섞여 떠오를 수 있겠지만, 엄마를 인식하는 가장 대표적인 감정이 있을 겁니다. 

일찍 돌아가신 경우라면 '그리움'이 가장 클 수도 있고, 양육방식이 너무 강압적이었다면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혹은 따뜻한 느낌, 든든한 내 편, 죄책감, 후회, 분노, 원망 등 다양한 감정들이 들 수 있겠죠.

저는 아기 때 엄마로부터 분리불안이 심했습니다. 유아기에는 엄마로부터 채워져야 할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철이 일찍 들었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 하는 게 많았고, 그 이후로는 독립적이고, 문제 해결 능력이 높은 문제 해결사로 성장해 있었습니다. 

가정사에서 힘든 일들이 많고, 불안한 환경이 지속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늘 엄마는 저에게 지켜야 할 존재, 보호해야 할 존재, 책임감과 같은 무거운 느낌으로 존재했습니다.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은 곧, 불안을 무의식 속에 늘 깔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릴 때 엄마가 볼일 보러 간다며 저를 잠시 떼놓고 집을 비울 때 느꼈던 불안, 겨우 버티고 있는 듯 힘들어 보이는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버릴까 봐 두려웠던 마음, 엄마를 어떤 상황으로부터, 누군가로부터 지켜내야 했던 어린 나의 무거운 책임감 등이 떠오릅니다. 

누군가에게 엄마는 늘 다정하고,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고, 친구 같은 존재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마음으로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산 같은 존재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겐 그 반대였습니다. 어린아이가 어른인 엄마를 항상 지켜내야 한다는 그 무거운 책임감과 불안을 안고 살았습니다. 


무의식 감정의 현실화

의존성 분리불안이 아니라, 지켜내야 할 존재로서 불안을 무의식에 깔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떨어져 있으나, 함께 있으나 불안할 상황이 자주 발생했습니다. 과거에는 다른 형태의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현재는 아픈 엄마가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해서 넘어지고 다치는 상황으로 말이죠. 

성장 배경에서 그럴만한 원인이 있었으니, 결과적으로 불안한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원인이 될만한 사건의 씨앗을 무의식이란 밭에 심어서 물을 주고 무럭무럭 거대한 아름드리나무로 키운 건 바로 저 자신이었습니다. 

불안한 감정이 싫었고 떠올리기도 싫었으니까 어떻게든 느끼지 않으려고 저항했을 것입니다. 괜찮지 않지만 괜찮은 척해야 이 세상에서 살아나갈 수 있었으니까요. 

어릴 때부터 엄마는 어린 딸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엄마에겐 자신을 지켜주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요. 여느 모녀관계처럼 함께 있으면 계속 싸우면서도, 결국 서로를 놓지 못하고 함께 지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정서적 독립을 바라는 마음이 크지만, 그만큼 분리불안을 느끼기도 합니다.

엄마를 간병하고 있는 지금, 그 관계 패턴은 더욱 고착화되어 서로의 숨통을 조입니다. 몸이 불편하고 균형을 잘 잡지 못해서 딸에게 모든 걸 의존해야 하는 지금의 상황이 엄마에겐 너무나 고통스럽고 괴롭습니다. 

망가져가는 엄마를 보며 지켜내지 못한 것 같은 죄책감, 내가 해결해 줄 수 없는 것에 대한 무력감 앞에서 좌절하고 괴로웠습니다. 하루 종일 엄마의 모든 불편과 요구사항을 들어주고 맞춰줘야 하기에, 자신의 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 지금의 삶이 비참하고 가슴 아팠습니다.

서로에게서, 이런 숨 막히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 자유를 갈망하는 마음만큼 강하게 서로를 구속하고 있습니다. 엄마가 건강할 때는 함께 살아도 각자의 일상을 보내고, 필요한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서 건강한 관계가 가능했습니다. 

원인 불명으로 투병 중인 엄마와 간병하는 딸, 이 역할극은 그동안 무의식에 꼭꼭 눌러 담은 불안, 두려움, 책임감, 숨 막히는 감정들이 뒤엉켜서 만들어진 결과물일까요?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어서 몇 년간 병원을 전전긍긍해야 하는 불안한 상황, 또 넘어져서 다치면 이젠 정말 끝이라는 두려움에 24시간 늦출 수 없는 긴장감, 사회생활을 하지 못해서 고립되는 두려움, 돈을 벌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불안 등 다양하게 펼쳐지는 이 장면들의 내막에는 항상 불안이라는 감정이 따라붙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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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이젠 인정해야 합니다. 항상 열심히 살았고, 뭐든지 과하게 열심히 했지만, 결과는 그 정반대일 때가 많았습니다. 엄마를 낫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젠 포기가 아니라, 저보다 더 똑똑하고 현명한 삶이 이끄는 대로 가만히 따라가 보려 합니다. 힘을 쭉 빼고 물살을 따라 몸을 맡기듯 내맡김을 하는 것이죠. 저항감이 강하게 올라올 때는 그것을 또 온몸으로 절실히 느껴주고, 그다음 힘을 빼고 내맡기며 관찰자로서 이 모든 현상들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가만히 바라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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