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간병하며 수많은 불안과 고통을 마주하게 됩니다. 작은 사고 하나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엄마의 손가락에 생긴 부상을 계기로 마주한 내면의 불안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마음을 일기 형식으로 적어봅니다.
목차
엄마의 손가락 부상으로 마주한 내 안의 불안
엄마는 저녁 식사를 하고 양치 후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고, 나는 식사 후 뒷정리를 하고 설거지를 막 하려던 순간이었다. 엄마가 선풍기 방향을 조절하려고 만지는 소리가 들려서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나는 집안일을 할 때도 항상 엄마가 안전한지, 불편한 게 없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엄마는 선풍기 방향을 맞추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엄마 오른쪽 손가락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엄마 손을 확인해 보니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이 네 군데나 찢겨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혹시 깊게 다쳐서 지혈이 안될까 봐, 병원에 가서 꿰매야 하진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거즈로 누르고 지혈을 하자, 다행히 피는 좀 멎는 듯했다.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상처 밴드를 붙였다. 선풍기 헤드를 만지면서 돌아가는 선풍기 날개에 손가락이 다친 것이다. 철망은 손가락이 들어갈만한 사이즈가 아닌데, 확인해 보니 철망 하나의 간격이 넓어져 있다. 거기로 손가락이 쑥 들어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엄마의 상처를 보자 내 온몸이 쓰라리고 아프다. 엄마에게 다친 것도 몰랐냐면서 왜 소리도 안 지르냐고 물었다. 그냥 엄마는 갑자기 손가락이 찌릿했다고만 말한다. 몸이 불편해지고부터 감각이나 반응 속도가 느려져서, 통증도 뒤늦게서야 느낀다.
선풍기 헤드를 만질 때는 조심해야지 손가락이 철망 속으로 들어갈 정도로 깊게 넣으면 어떡하냐고 다시는 선풍기 헤드를 만지지 말라고 폭풍 잔소리를 했다. 엄마는 별일 아닌데 과민반응하지 말라고 한다. 물론 건강한 사람에게는 별일이 아닐 수도 있다.
나도 요리를 하다 보면 칼에 벨 때도 있고, 작은 화상을 수시로 입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는 좌측 팔, 다리, 손, 발이 다 불편해서 우측 기능을 과도하게 사용하다 보니, 우측 기능도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오른쪽 손가락의 부상은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단순하게 오른쪽 손가락 하나 다친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오른쪽 손마저 기능을 제대로 못하면 그만큼 몸을 쓰기가 더 힘들어지고 낙상 위험도가 지금보다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이 다쳐도 그것을 바로 감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칫 잘못했으면 손가락이 찢으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나의 불안도를 더 높였다.
이건 손가락 하나 다친 사소한 부상이 아니라, 이제까지 엄마가 겪은 그 수많은 사고의 연장선으로 느끼기 때문에 나의 반응 또한 예민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수년간,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면 평생을, 나는 엄마의 안전을 책임지는 보호자의 역할을 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의 불안과 책임감은 언제나 한 세트로 따라다닌다.
엄마의 고통에 공명하는 마음
최근 들어 엄마는 머리의 강한 열감, 호흡곤란, 심장 두근거림, 코막힘, 입 마름의 증상으로 매우 힘들어하셨다. 그런 증상을 수시로 호소하는데, 하나를 해결해 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해 주면 또 다른 문제가 일어나는 상황의 반복이다. 마치 엄마는 하나라도 문제가 없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내게 고통을 호소했다. 가장 힘든 건 엄마이겠지만, 나 역시 미쳐버릴 것 같은 상황이다.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녀오고, 또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도 다 해본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편할 수 있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준다. 엄마는 온도 변화에 무척 민감해져서, 기온이 조금만 올라가도 견디지 못한다. 에어컨은 장시간 틀면 코막힘이 심해지고,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 때는 특정 온도 이상이 되면 남들에겐 덥지 않은 날씨임에도 엄마는 견디지 못한다.
이런 증상의 원인 중에는 심리적 불안도 큰데 , 여기서 더 심해지면 공황장애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엄마의 육체적 정신적 모든 건강 상태를 다 책임지고 케어할 수는 없다. 물론 이 세상 어느 병원도 그 모든 걸 다 책임져주진 않는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것들을 해줄 수는 있지만, 그 결과까지 모두 책임져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이 내 어깨를 짓누르는 책임감의 무게를 조금 덜어줄 수 있는지는 몰라도, 그런 엄마의 고통에 공명하는 내 마음의 무게는 별개의 문제다. 엄마의 상태가 편해지는 걸 봐야, 그제야 나도 한숨 돌릴 수 있는 것이다. 엄마와 매일 이런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놓지 않는 마법 같은 희망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기분이다. 터널은 분명히 입구와 출구가 있다. 그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래서 이렇게 한발 한발 걸어가다 보면, 분명 출구의 밝은 빛을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어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하고 두렵다. 만일 엄마가 병명을 찾지 못하고, 제대로 된 치료 방법도 찾지 못한 채 고통 속에 떠나게 될까 봐 그게 가장 두렵다. 언젠가 엄마와 헤어지는 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자 고비가 되겠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지 엄마의 삶이 편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영성 공부, 마음공부 측면으로 보자면 얘기가 조금 달라질 수는 있다. 영적 성장을 위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스스로 선택하기도 하기 때문에, 내가 이 상황을 너무 마음 아프게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또한 내가 지금 겪는 고통 역시도 마찬가지다.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 거쳐야 할 과정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앞에 펼쳐진 이 현실은 과연 무엇인가? 내가 보고 있는 게 다 진실인가? 자각몽을 꿀 때, 악몽 속에서 갑자기 꿈임을 자각하면 그때부터 그 꿈은 완전히 새로운 장르가 된다. 난 지금 무얼 놓치고 있는가? 무엇을 자각해야 하지?
엄마가 건강했던 현실에서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다치고 아프기 시작하는 현실로 트랙 이동을 했다. 난 지금도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아무렇지 않게 건강하게 잘 걸어 다닐 것만 같다. 그게 병원의 치료를 통해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거짓말처럼 모든 게 다 좋아질 것만 같다.
누군가는 허무맹랑한 기대라 할 수도 있고 가능성이 희박한 희망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모르게 나는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그 마음이 너무 간절하고, 꼭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는 강한 집착은 없다. 그렇다면 반대의 저항감도 만만찮을 텐데, 지금은 그냥 막연하게 그런 마법 같은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생각이 들 뿐이다.
그날에 나는 감격하며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 것이다. 그리고 그 마법 같은 기적의 기운을 담아서 이곳에 글을 쓸 것이다. 그 글을 읽는 사람들도 모두 좋은 기운을 받아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게 말이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해도 낙담하진 않겠다.
그냥 더도 덜도 말고, 우린 오늘 하루만 살아갈 수 있는 기운을 내면 된다. 먼 미래를 걱정하며 불안에 떨지 말고, 오늘 하루만 잘 살아냈으면 그걸로 만족하자. 그 하루를 잘 살아내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냥 오늘 하루, 존재했으면 된다. 너무 힘들 때는 무언가를 하려고, 잘 해내려고 노력하지 말고, 그냥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거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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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엄마를 돌보는 하루는 예상하지 못한 걱정과 함께 지나갔습니다. 작은 사고 하나에도 마음이 크게 흔들리지만, 그렇다고 먼 미래까지 미리 두려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것.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마음을 기억하며, 오늘도 하루를 살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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